예전에 같이 일하던 한 동료가 하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가슴에 꼭 안고 잘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땐 워낙 어린이 책에 관심이 없어서 귓등으로 듣고 흘려버렸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우리 아이가 책을 가슴에 꼭 안고 잘 때가 종종 있답니다. 그 이유는 잠자리에서 엄마가 너무 졸려 읽어주지 못하고 자버리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기 위해서죠. ^^

"엄마, 목련이 영어로 뭐예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죠. ^^ 우리 집 꼬마는 올해 봄 목련이 피기 시작하면서 36개월을 꽉 채웠답니다. 누워서 눈만 깜빡깜빡대던 시절, 백일이 지날 무렵부터 영어그림책을 접했던 터라 녀석은 요즘 모르는 영어단어를 숨가쁘게 물어댑니다.

그것도 제 수준에는 무척 어려운 영어단어들만 어떻게 그리도 잘만 골라내는지... 김에 밥을 싸먹다가도 "김이 영어로 뭐예요?", 사무실에서 동료가 건네준 모과를 차 뒷좌석에 뒀더니 차에 타자마자 좋은 향기가 난다기에 모과라고 알려줬죠. 그랬더니 대뜸 날아오는 질문, "모과는 영어로 뭐예요?" 툭툭 공을 던지듯 물어대는 통에 저의 짧은 영어실력이 무척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아이에게 장난감보다는 책을 더 가까이 해주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저희 집엔 몇 가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장난감밖엔 없죠. 아이는 책을 장난감처럼 물고 빨며 컸고 하다 못해 케이스가 딸린 책은 그 안에 꽂아 넣는 것마저 장난감 갖고 놀듯 했지요. 그러다 보니 아이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더군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엄마가 있으면 "엄마, 책 읽어주세요."가 아침인사가 되고, 엄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땐 혼자서 책장의 책을 하나씩 빼들고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가 되었지요. 두 돌이 지나면서부터는 페이퍼백에 훨씬 친근감을 느끼는지 얇은 책 대여섯 권을 들고 다니면서 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책장 넘기는 수준이 저보다 훨씬 능숙해졌답니다.

요즘 아이는 카세트에 보고 싶은 영어그림책의 테이프를 꽂아놓곤 혼자서 책을 보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물론 글을 읽어내진 못하지만 여러 번 읽어준 탓에 언제 페이지를 넘겨야 할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인지 죄다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제게 새로 생긴 고민은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면 그 어떤 책이든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죠.

우리 아이에게 책을 좋아하게 하는 방법은,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답니다. 간혹 너무 정적인 내용이라 잘 보려 하지 않는 그림책도 잠자리에서 몇번 읽어주고 나면 금세 좋아하는 그림책 순위에 올라가곤 했었거든요. 그리고 그림책 열 권 정도를 읽어주다 보면 스르르 잘 자곤 했었죠.

그런데 책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론 잠자리에서 책을 읽다 잠들기가 영 힘들어졌답니다. 처음엔 한글그림책을 먼저 이해하기 시작하더니 요즘 들어선 조금 글이 많은 영어그림책에까지 이해력이 뻗어나갔는지 도통 잠자려 하지 않네요. 오히려 졸린 눈 비벼가며 재미있다고 손뼉까지 치는 통에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

책이 점점 많아지면서 아이에게서 드러나는 변화로는 무엇보다도 어휘력이 부쩍 늘어가는 걸 꼽을 수 있겠지요. 우리 집 꼬마는 처음엔 한글그림책에서 무섭도록 빠르게 말을 배워나가더군요.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엄마, 까치집이에요." 하고 소리지를 때 느끼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은 표현하기가 참 어렵죠. 이 녀석이 어디서 까치집을 알았을꼬 싶어 의아해하다가 며칠 후 그림책을 읽어주다 뒤늦게 까치집을 발견하기도 하구요.

그렇게 한글그림책에서 놀라울 만큼 빠르게 말을 배우는 시기를 거치더니 이젠 영어그림책의 문장을 곧잘 뱉아내기 시작하지요. 동생이 아직 없기 때문인지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녀석이 인형들을 조르르 앉혀 놓곤, "This is a card... This is a book..." 해가면서 혼자 어설픈 영어를 할 땐 옆에서 보면서 배꼽잡고 웃기 딱 좋습니다. 나름대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형들에게 자기 영어실력을 잔뜩 뽐내면서 강의를 한다는 설정을 해놓은 것 같더군요.

아이의 짧은 영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리 집 꼬마의 영어실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건 절대 아닙니다. 뒤집기도 못할 때부터 읽어준 것이 영어그림책이지만 생활 속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습관을 갖지 않은 탓인지 영어실력이 기대만큼 쑥쑥 상승만 하는 건 아니더군요. 그래서 간혹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너무 눈에 보이는 결과엔 미련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건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의 습관이고, 아이는 느리지만 꾸준히 영어환경에 노출되어온 탓에 지금은 조금씩 그 결과물을 출력해내고 있는 과정이니까요.

며칠 전 세 돌이 되면서 처음으로 선샤인(Sunshine) 하나를 선물받아 컴퓨터 앞에 앉혀봤습니다. 아이는 아직 책과 오디오, 비디오 이외의 영어를 접한 적이 없어 정식으로 컴퓨터에 앉혀주니 무척 뿌듯해하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놀이를 할 수 있는 시디롬에 흥분마저 하는 듯했죠. 저 역시, 처음 잡는 마우스지만 맞는 단어에 클릭하려고 집중하는 녀석이 기특하게까지 보이더군요.

사실 선샤인 이전에 리딩트리를 구입했었는데 이 책에도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처음 안겨준 책은 1단계뿐이었는데 정말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영어단어를 그리 입 밖에 내지 않을 무렵이었는데도 1단계에 나온 단어는 며칠 되지 않아 바로 튀어나오더군요. 그리고 재미있는 건, 아이가 거의 한 달 넘게 매일 리딩트리 12권을 한꺼번에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는 거죠.

Kipper라는 아이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건지 Kipper의 이야기를 열광적으로 좋아했더랬습니다. 이를테면 미장원에 가면서도 "키퍼도 미장원 갔었지?" 하고 마치 친구 얘기하듯 하더군요. 부침개라도 부치는 날엔 작은 프라이팬을 얼른 꺼내서 종이 한 장 얹어놓곤 “Pancake race!" 하며 방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하구요. 그러다 1단계 추가분과 2단계를 구입하자 짧은 문장은 따라 말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문장이 무척 쉽기도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Look at me." 하고 입에 달고 다녔었지요. 혼자서 이불을 뒤집어쓰며 "Can you see me?" 하며 자기 딴엔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혼자서 보기 아까울 정도였죠.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든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속상한 일일 테지요. 연극 하나 보러 가기도 쉽지 않고, 볕 좋은 날 공원에 놀러나가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 너무 속상해서 제겐 늘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시간이 소중한 편입니다. 출근할 때면 아이의 책가방 안에 늘 열 권 남짓 되는 책을 준비하고 다녔지요. 운전은 아이 아빠에게 맡기고 뒷좌석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자투리 시간들이 제게는 물론이고 아이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된다는 생각에서였죠.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단지 학습을 위한 건 결코 아니었답니다. 엄마가 책 읽어주는 시간이 아이에겐 오로지 자기와 함께하는 시간이기에 무척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더군요. 그 시간만큼은 엄마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니까요. 자투리 시간에만 책을 읽어줘도 아이는 엄마가 늘 자기와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은 제 소망에서 시작한 일이기도 했구요.

그렇게 해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늘 출근시간과 잠자리로 고정되었지요. 그런데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줄 땐 밀려드는 하루의 피곤함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게다가 누워서 책을 들고 읽어주는 건, 마치 벌서는 기분까지 들 정도로 팔이 아파오기도 했구요. 그래도 다행히 잠자리에서 읽는 그림책은 아이가 페이퍼백을 무척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해결이 되기도 했지요. 아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리딩트리는 무척이나 가벼운 페이퍼백이었으니까요.

또 하나, 처음 아이에게 영어환경을 만들어주기 시작한 건, 순전히 훌륭한 영어그림책을 접해준다는 이유에서였지요. 그런데 단지 좋은 그림책을 원서 그대로 보여주려던 그 작은 시작이 지금은 의외의 결실을 조금씩 맺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한글과 영어를 함께 익혀가면서 책 읽는 재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어쩌면 살아가면서 귀중한 자산이 될지도 모를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지요.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고,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가 엄마와 함께 세상을 알아가는 눈을 서서히 떠간다는 것, 게다가 아이에게 ‘영어’라는 탄탄한 경쟁력을 덤으로 심어준다는 것... 정말 기분 좋은 일이지요...